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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차 여행/중국

2001년 10월 나에게 서유기와 중국집으로만 연상되던 중국은..

by 즐거운 항해사 2007. 9. 2.
도착한 천진에서 북경가는 버스를 보따리장수아저씨와 같이 타고 가기로 했다..
그 아저씨는 어려보이는 내 얼굴때문인지 연신 걱정을 해댄다..
중국말은 잘 하냐..뭐..할 줄 모른다고..그럼 어떻게 다닐래..
하면서 물주세요 라는 중국말을 가르쳐주면서 매점에서 물을 사와보란다..
난 웃음이 나오면서도 그 마음이 고맙기만 해서 그대로 물 하나 사왔다..

북경가는 기차는 느려터져서 4시간 정도가는 완행이다..
너 봐라 벌써 지치지..쯧쯧 하며 계속 애쓰는 아저씨..
아저씨 전 인도에선 계속 12시간짜리 기차와 버스만 타요..하고
입안에서 맴도는 말을 하지 않았다..
여행에 대한 그런 자랑아닌 자랑같은 말은 듣기도 하기도 싫기 때문이다..
북경역에서도 걱정스런 눈으로 버스길까지 따라오시며 들고 다니는 컵신라면 하나 줄까
물어보신다..

북경의 유명한 게스트하우스 교원반점은 쉽게 찾았다..
중국식 발음으로 여러번 말해서 물어물어 갔다..
며칠 뒤 여행에 필요한 중국말에 익숙해질때까지 계속 그런 식으로 다닌 것이다..
그게 여행의 즐거움..
1박에 4800원 정도이다..4인침대실이..
오는 길에 봐둔 조선족 식당에 들러 "어향육사"를 시켰다..
인터넷 정보로 프린트해온 족보에서 맛있다고 한 것이다..

20번 버스타고 시내를 한 바퀴 구경했는데 천안문은 그냥 창으로 보기만 하고
번화가인 왕푸징에 내렸다..
제 백팩 첫 화면에 나온 사진이 그 곳..
서울 이상으로 거대한 빌딩군이 깔끔하게 늘어서 있었고..
"전취덕"이란 북경오리 전문점의 맛도 한국의 북경오리완 틀렸다..
기차도 유럽의 기차시설처럼 깨끗하고 조용했고..
북경서역도 꽤 현대적이었다..
다만 이 곳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아직 문명을 따라오지 못하는 것같았다..
올림픽 등 외부인의 방문에 대비해 정부에서 부탁한 것 열가지에 하루 1번 머리감기가
포함된 걸 보면 말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나 그런 전환점은 거쳤을..그리고 거칠 것이므로 이해는 갔다..

서기 2002년이라고 세계 모든 나라가 동시간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도는 1900년대에 머물러있고..북유럽의 수도들은 벌써 미래에 있다(한국인의 관점에서..
그리고 10년전 경험으로)..태국은 아마 1960년과 1990년이 혼합되어 있고..
그것이 지구라고 생각된다..

내 중국방문 목적은 오직 티벳행이므로 별다른 관광은 싫었다..
그 곳으로 가는 한국여행자도 이 시기엔 별로 없었고..
관광하는 것이 내 스타일이 아니고 모험적인 요소를 찾아 떠난 것이므로..
오직 티벳을 향해 빠른 코스를 연구하고 연구했다..

거기서 만난 중국유학생들이 참 많았다..
그 특징은 다른 곳의 유학생보다 비교적 예의가 있었으며..
중국유학에 대해 아주 강한 자존심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내가..우리가 몰랐던 명문대들..서울대를 능가하는 학교가 몇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중국말도 못 하면서 어떻게 여행하실려고 그래요..하며 자기들의 회화로 여러 군데
안내해준다..그건 고마웠지만 한자도 모르는 유럽인들도 다 하는데..
물론 영어가 안 통해 거의 경기를 일으키지만..
그래도 티벳가는 것은 꺼려한다..거기가는데 비싸다면서요..
고생많이 한다면서요..

여행엔 종류가 많다
그 중에서 난 어느새 모험여행에 빠진 것같다..
우리나라에선 경험 할 수 없는 모험..
이미 수많은 여행자들이 다녀간 티벳이지만 내가 그 험난한 코스를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참을수 없다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취했을 때의 쾌감..마약과도 같은 쾌감..

그리고
티벳가는 길엔 행운이 따랐다..